[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도대체 다음 세대가 누구에요?”

방송인 타일러 씨가 한 중학교에서 강연에서 이같은 질문을 했더니 “옆 초등학교 아이들”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다음 세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본인을 떠올리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다음 세대를 위해 기후위기를 해결하자”는 구호가 공허한 이유다.

19일 세계자연기금(WWF) 주최 2024기후행동컨퍼런스에 기조 강연자로 나선 타일러 씨는 “다음 세대라는 표현이 쓰이기 시작한 건 ‘지구의 날’이 지정되던 1970년대”라며 “다음 세대는 1988년생인 저였는데, 2020년대가 된 지금까지 (기후위기 대응) 진행은 더디다”고 꼬집었다.

이어 “우리가 지금부터 하는 행동들은 다음 세대를 위한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라며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적응해야 하는 건 살아있는 사람들이 타격을 입는다. 자꾸 다음 세대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라고 설명했다.

기후위기 관련 전망에 정답을 기대하는 것도 흔히 하는 착각으로 지목했다. 타일러 씨는 “(언제까지) 탄소중립을 이룬다는 목표는 방향성 제시일 뿐 최종 목표로 삼으면 안 된다”며 “(기후위기의) 원인이 뭔지 이미 다 알고 있으니 원인 제거에 집중해야 한다. 정답은 통계가 아니라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는 다짐 역시 금물이라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예시로 들었다. 전세계 1인 당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약 4t으로 미국인은 연간 약 16t, 한국인은 약 12t을 배출한다. 만약 미국에서 생활한다면 전세계 평균보다 4배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게 되는 셈이다.

타일러 씨는 “미국에서 살면서 혼자 아낀다고 해도 탄소 배출의 0.0000000003%밖에 줄일 수 없다. 이보다 다른 사람도 같이 (감축)하게끔 이끄는 게 훨씬 효과가 있다는 의미”라며 “남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데 집중해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착각들을 실천으로 바꿔가려면 기후위기를 염두에 둔 투표, 친환경 소비 생활, 자유롭게 기후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환경 등을 갖춰야 한다고 타일러 씨는 주장했다. 그는 “기후위기 대응이 과학기술에 따라 달라진다고 여기기 쉽지만 실은 정치경제의 영역”이라며 “개인에게 너무 책임을 묻지 않고 제도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실천을 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넷제로 산업을 위한 녹색이행 패널 토론에서는 기후금융에 대한 질답이 오갔다. 이날 금융위원회와 환경부에서 발표한 민관 합동 452조원 규모의 금융지원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지에 대한 질문이다.

온실가스정보센터장을 역임한 유승직 숙명여대 기후환경융합학과 교수는 배출권 거래제 활용과 기존 재원의 용도를 바꾸는 방식을 제시했다.

유 교수는 “기업들이 배출권 가격을 부담하는 게 아니라 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데 일조하자는 접근이 필요하다”며 “가령 재건축 시 제로에너지건물에만 프로젝트파이낸싱을 하는 식이라면 부담 없이 건물 부문에서 온실가스 감축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윤희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재정이 한계에 도달해 있고 한정된 재원을 두고 여러 분야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기후위기 대응으로 산업 패러다임이 전환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력이 무너진다”며 “기후위기 대응에 정부의 초점이 전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좌장을 맡은 김용건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가 너무 싼 가격에 무언가를 쓰면 누군가 부담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탄소중립을 위한 투자와 기술 개발, 행동이 필요한데 인센티브나 수익성이 있어야 실현될 수 있다”며 “에너지나 탄소(배출권) 가격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돈을 벌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