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안이 공개됐어야 했지만, 현재까지 발표가 미뤄지고 있다. 그 사이 정치권이 내놓은 총선용 에너지 정책의 방향성이 서로 달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무엇보다 관련 인프라 구축이 부족한 상황에서 전기본 발표가 무의미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은 당초 지난해 말 발표가 예상됐지만, 계속 일정을 미뤄지다 결국 제22대 총선(4월 10일)이 끝난 이후로 예정됐다.

전기본은 향후 15년간의 전력수급 방안과 장기 전망, 전력수요 관리, 전력설비 시설 건설 등 국가전력 운용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을 담는 계획안이다. 11차 전기본은 2024년부터 2038년까지 적용된다. 발표가 늦어지면서 우려섞인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계획이 수립된다 해도 관련 인프라 조성이 미비해 어렵게 마련한 계획이 모두 수포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10차 장기송변전설비계획에 따라 한국전력공사는 2036년까지 송전과 변전 투자에 56조원, 배전에 44조원 등 총 100조원을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인프라 투자가 완료돼야 2036년까지 예정된 발전소들이 제대로 운영할 수 있다.

원전이 추가되든,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공급하든 송전망이 없는 전력 계획은 공염불에 불과한 만큼 인프라 투자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관련 투자는 거의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지낸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송전망 등 전력 계통 인프라는 상당히 미비한 수준”이라면서 “구축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주민 수용성 문제까지 있는데 인프라 구축에 속도가 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슬기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주민 수용성 문제가 커 송전선 인프라 구축이 미비한 상태”라면서 “해상풍력이든 원전이든 전력이 수요처까지 갈 수 있도록 송전선 구축에 속도가 붙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공사는 오는 2026년까지 전력 송배전 인프라 완공 계획을 밝혔지만 이마저도 회의적 시각이 많은 상황이다.

아울러 정책에 따라 사업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기업들은 난감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태양광, 해상풍력 등 신규 발전 설비 사업을 준비하는 기업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관련 기업이 향후 사업에 대한 논의를 세밀하게 준비하기 위해선 전기본을 참고 안 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발전설비 계획을 준비하는 기업들은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11차 전기본 총괄 위원장인 정동욱 중앙대 교수는 <아시아타임즈> 와 통화에서 “과거와는 달리 전력 공급 체계가 다양해지고 수요 공급 예측도 어려워져 점검할 사안들이 많다 보니 계획 수립이 늦어지고 있다”며 “현재 준비 과정이 늦어지고 많은 문제가 있는 걸 안다. 송전망 보강, 수요 예측 등 여러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치권이 22대 총선을 앞두고 공개한 기후 관련 공약들이 궤를 달리해 혼선이 가중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여당은 무탄소 전원인 원자력발전 확대, 야당은 재생에너지 대폭 확대 등 큰 뼈대에서 차별점을 두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기업의 사용 전략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전략인 RE100을 앞세웠다. 민주당은 산업단지 및 일반 건물을 포함하는 루프탑 태양광 확대,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에 RE100 기업 유치 지원 등의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민주당은 우선 한국형 발전차액지원제도(FIT) 재도입, 신재생에너지 의무 공급 비율(RPS) 비중 상향을 추진하는 한편,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의 태양광 설치 의무화 등을 통해 공공기관 건물, 철도, 도로 등에 공공 RE100을 적용하기로 했다. 또,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2018년 대비 52% 감축을 추진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탄소중립산업법(한국형 IRA법)을 제정하고, 재생에너지를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대상에 추가하는 방안도 공약했다. 아울러 정부 부처 내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체계 전면 개편도 약속했다.

국민의힘은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균형적 확충을 통해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여당은 혁신형 차세대원전인 SMR 기술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원전, 풍력발전 등 무탄소 전원에 유리하도록 전력시장을 개편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해상풍력 계획입지 및 인허가를 간소화하고 주민 피해보상, 이익공유 등 기준마련에 나설 계획이며 무탄소에너지 인증 체계를 국제표준화하고 무탄소 에너지 관련 사업, 투자, 연구에 대한 지원을 이어갈 예정이다.

또한 여당은 수소생태계를 구축해 수소경제 선도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린수소 해외 투자 확대, 국내 청정수소 생산기지 마련 등 수소공급망 확보하고 물류, 항만 등 지역에 청정수소 클러스터, 수소도시를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

유승직 숙명여대 환경경제학과 교수는 “과하게 한쪽으로 치우친 공약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 산업에 좋지 못하다”면서 “에너지 정책이야 말로 양쪽이 심도 있게 대화하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정책과 공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