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기온 상승 1.5도 억제라는 파리협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2035년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대비 60% 감축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한국 산업계의 달성 역량으로는 55% 감축도 어렵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통령직속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녹위)가 20일 ‘과학적·합리적 2035 NDC 수립 방향 및 상황 진단’을 주제로 개최한 ‘2035 NDC 컨퍼런스(이하 컨퍼런스)’에서 제기된 분석이다.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는 파리기후변화 협정 참가국이 스스로 정하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다. 2015년 제21회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 참석한 당사국들은 '2050탄소제로' 사회를 달성하기 위한 중간단계로, 2030년 NDC를 스스로 정하고, 이를 시행해 나갈 것을 결의한 바 있다.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은 보다 확실한 탄소감축을 위해 2020년부터 5년 주기로 NDC를 수정 · 보완해 제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한국은 2021년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NDC를 제출한 바 있다. 그리고 다가오는 2025년에는 2035년 NDC를 제출해야 한다.

한국은 현재 2035 NDC 마련을 위해 ▲감축 시나리오에 대한 정책을 협의하고 조율하는 부처 협의체 ▲배출전망 및 복수의 감축시나리오를 마련하는 공동 기술작업반 ▲중립적 시각에서 NDC 쟁점 관련 자문을 제공하는 외부 자문단을 꾸려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컨퍼런스에서 전문가들은 2035 NDC가 2030년 NDC인  '2018년 대비 40% 감축'보다 상향된 수준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발제자로 참여한 유승직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는 IPCC가 제6차보고서를 통해 전세계가 2035년까지 2019년대비 평균 60%를 감축해야 한다고 설명한 점을 언급하며, “중요한 것은 온실가스는 지금 감축하지 못하면 나중에 많이 해야한다 (...) 예컨대 2030년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2035년에는 감축량이 (2018년대비) 65%로 올라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원칙적으로도 2035 NDC는 2030 NDC보다 높은 수준의 목표를 포함해야 한다. 파리협정 4조에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기존보다 진전하여야 하며, 가능한 최고의 의욕을 반영해야 한다'라는 '진전의 원칙'이 규정돼있다.

유 교수는 높은 수준의 목표 설정을 위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을 통한 목표 설정 방식을 재고해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NDC를 설정하기 위해  2000개 이상의 감축수단 별 비용과 잠재적 감축량을 계산하는 것은 물론 각 시나리오별 물가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계산한 과학적 접근에 집중해왔다.

특히 부문·업종별 감축량까지 계산을 해 업종별 차등화된 감축목표를 설정하기도 했다. 즉, 감축 수단에 따른 ‘감축비용’을 고려하고, 각 시나리오 별 파급효과를 분석, 부문별·업종별 감축 잠재량을 예측하는 등 과학적 분석을 통한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 교수는 “2005년에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너무 비싸다고 했지만 불과 10년~15년만에 석탄보다 저렴해졌다"며 “우리가 현재 수준의 비용만 생각하다보면 적극적으로 목표를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 무리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분석 수준을 미래 시장 보급과 가격 변동, 산업계 변화, 글로벌 흐름의 변화까지 고려한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 교수는 “한국은 굉장히 디테일하게 감축 비용을 고려하고 업종을 고려해 감축목표를 설정하지만 외국의 경우 정부의 의욕과 국제 사회에서의 역할과 책임감이 더 많이 반영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권경락 플랜 1.5 대표 역시 “한국의 2030년 NDC는 다른 선진국 대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하며 향후 2035년 NDC 수립에 있어서는 ‘탄소예산'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IPCC가 산출한 잔여탄소배출총량에 따르면, 한계온도 내로 지구온난화 억제 가능성이 50% 되는 시나리오에서 인류에게 남은 배출가능총량은 5000억 톤이다.

국내 기업들이 평가한 주요국 대비 국내 탄소중립 지원 정책의 수준. 사진=대한상공회의소

그러나 IPCC가 제시한 2035년까지 감축해야 할 전세계 평균 감축량보다 낮은 55%를 2035년 NDC로 설정해도 현재 수준의 산업계 감축 여력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재윤 한국은행 지속가능성장실 과장은 이같은 분석과 함께 “2035 NDC 설정과 병행되어야 할 것은 온실가스 감축기술 개발 지원계획"이라며, “국내 산업계가 감축 부담을 감내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추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들은 탄소중립에 대한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을 크게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3월 국내 온실가스 다배출기업 390개사를 대상으로 탄소중립투자계획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기업의 38%만이 탄소중립 투자를 진행 중에 있었다. 투자 계획이 없는 응답자들 중 대기업들은 그 원인으로 투자수익의 불확실성을 꼽았다. 실제로 응답기업의 71.7%가 ‘탄소중립 투자 위험도가 높다’고 답변했다.

조영준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 원장은 주요국(미국, 유럽연합, 일본)대비 탄소중립 지원 정책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음을 지적하며, 인프라·재정·R&D·법제도 측면 전반에서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현재는 중소·중견기업의 환경산업에만 지원이 집중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기업과 제조기업의 탄소감축 사업에도 적극적인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원장은 “기업이 근본적으로 탄소중립으로 전환하려고 하면 생산방식을 바꾸고 원료를 바꾸고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을 바꿔야 한다"며 “포스코를 예로 들면 현재 고로 하나를 시범적으로 전기를 이용한 고로로 바꾸는데 6600억이 들었다. 현재 포스코는 에너지 공급을 자체 가스 발전소를 통해 해결하는데 만약에 산업전환을 시도하면 앞으로 에너지를 다 한전에서 공급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계의 배출량 감축이 현실화되기까지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만큼 정부의 더욱 적극적인 지원산업과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